화성 만년제, 정조의 실용과 조화

화성 만년제, 정조의 실용과 조화
경기도 화성시 융릉과 건릉을 출발해 안녕동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만년제 교차로’를 지나게 됩니다. 이 지명은 만년제(萬年堤)라는 저수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교차로 한쪽에는 만년제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함께 펜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만년제는 현륭원(顯隆園)의 동구(洞口) 부근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만년제는 1798년, 정조 22년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실록』 4월 27일자에는 만년제 완성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정조는 만년제를 조성한 이유에 대해 원침(園寢)의 수구(水口)에 방죽물을 저장해 현륭원 아래 백성들의 토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수원 장안문 밖에 만석거(萬石渠)를 만들고 여의동(如意)을 쌓아 대유둔(大有屯)을 설치한 것과 같은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만년제는 백성들의 안정적인 농경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농업용 저수지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정조 재위 기간 중 수원과 화성 지역에는 만년제 외에도 축만제(서호저수지)와 만석거 같은 저수지가 조성되어 농업 정책과 애민정신이 반영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들 저수지 주변에는 대유평(大有坪), 서둔동(西屯洞) 등 당시의 흔적을 담은 지명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만년제는 단순한 농업용 저수지를 넘어 현륭원의 풍수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점이 주목됩니다. 만년제는 네모난 방형 저수지 형태를 띠며, 중앙에는 괴성이라 불리는 원형 인공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난다는 전통적 철학이 저수지 구조에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연지 형태는 여주 세종대왕릉(영릉)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만년제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수원의 축만제나 만석거와 달리 출입이 제한된 상태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축만제 주변에는 국립농업박물관이 자리 잡아 지역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만석거 역시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반면 만년제는 펜스로 둘러싸여 출입이 어려워 복원과 활용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만년제는 매년 열리는 ‘정조대왕 능행차’ 주요 경로에 위치해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크며, 조속한 복원과 정비가 요구됩니다. 향후 만년제 표석 복제본을 발견 위치에 세워 역사적 기억을 되살리는 방안도 검토할 만합니다. 수원의 축만제와 만석거처럼 화성시 만년제도 시민들이 역사를 체감하며 휴식할 수 있는 생태·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합니다.
200여 년 전 조성된 만년제는 백성의 농사를 돕기 위한 실용적 수리시설이자, 자연과 전통 사상을 담아낸 조화로운 공간입니다. 정조의 애민정신이 깃든 이 유산을 통해 화성 곳곳에 남은 문화유산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