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쌀이 빚은 연담

여주쌀로 완성한 가을 축제
2026년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여주시 신륵사관광지 일원에서 열린 2026 여주오곡나루축제에서는 여주쌀과 지역 농산물로 빚은 전통주가 관람객을 맞았다. 장터와 공연장 초입에 자리한 도예랑은 기와지붕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내부에는 ‘여주쌀, 가을을 빚다’라는 문구가 걸렸다.
이곳에서 진행된 행사는 제6회 여주 오곡으로 빚은 가양주 품평회였다. 여주시가 주최하고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한 품평회로, 참가자들은 여주쌀과 여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이용해 직접 빚은 술로 솜씨를 겨뤘다. 축제장에는 출품작 전시와 시음회, 막걸리 채주 시연, 관람객 투표 등이 마련돼 가양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집에서 빚어 이어온 가양주
가양주를 한자로 쓰면 집 가, 빚을 양, 술 주를 사용한 家釀酒다. 글자 그대로 집에서 빚은 술이라는 뜻이다. 집집마다 손으로 술을 담가 제사상에 올리거나 손님상에 내던 생활 속 전통에서 비롯됐다.
이번 품평회는 이러한 가양주의 전통을 여주 농산물과 연결했다. 참가자들은 같은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기본 재료로 사용하면서도 발효 방식과 부재료 선택, 술을 거르는 방법 등에 따라 서로 다른 향과 빛깔을 지닌 술을 선보였다. 도예랑에 늘어선 병들은 모두 여주쌀에서 출발했지만, 완성된 술의 이름과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모든 술의 출발점 여주쌀 10kg
품평회의 주재료는 여주산 멥쌀이었다. 참가자는 주재료 구입비 4만 원을 내고 여주쌀 10kg을 배송받아 술을 빚었다. 부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품목도 여주산 농산물로 정해졌다.
- 여주산 찹쌀
- 여주산 고구마
- 여주산 흑미
- 여주산 가지
- 여주산 참외
- 여주산 복숭아
누룩은 전통누룩을 사용해야 했다. 설탕과 꿀, 합성 감미료는 넣을 수 없었다. 품평회 무대의 현수막에도 주재료를 상징하는 벼 이삭과 부재료인 고구마, 가지가 술병 그림과 함께 표현돼 있었다.
참가 분야는 일반부와 학생부로 구분됐으며, 각 부문에서 약주와 탁주를 심사했다. 약주는 익은 술에서 맑은 부분을 떠내거나 걸러 낸 술이다. 탁주는 막걸리처럼 뿌옇게 걸러 낸 술을 가리킨다. 동일한 여주쌀을 사용하면서도 맑게 거른 약주와 뿌연 빛을 살린 탁주가 나란히 평가를 받았다.
체를 통과해 막걸리가 되는 순간
10월 24일 오후 3시 도예랑 무대 앞 탁자에서는 막걸리 채주 시연이 진행됐다. 채주는 다 익은 술덧에서 술을 걸러 내는 작업이다. 술덧은 쌀과 누룩, 물을 섞어 발효시킨 것을 말한다.
흰 저고리를 입은 시연자는 큰 옹기 위에 나무 막대 두 개를 걸친 뒤 대나무 체를 올렸다. 장갑을 낀 손으로 체 안의 술덧을 누르자 뽀얀 술이 체 아래로 흐르며 옹기 안에 고이기 시작했다. 병에 담긴 완성품뿐 아니라 발효된 술덧이 막걸리로 걸러지는 과정까지 공개된 자리였다.
채주가 끝난 뒤에는 국자로 뜬 막걸리가 작은 투명 컵에 나뉘어 담겼다. 탁자를 둘러싼 관람객들은 차례로 술을 받아 시음했다. 체를 누르는 손길과 옹기에 모이는 술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동안 행사장은 전통 방식의 채주 과정에 집중하는 분위기로 채워졌다.
300여 건 신청에서 가려진 본선 67명
도예랑 무대 옆 기둥에는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라는 문구와 함께 본선 진출자 명단이 게시됐다. 2026년 3월 진행된 참가 신청에는 300건이 넘는 신청이 몰렸고, 예선을 거쳐 67명이 본선에 올랐다. 현장 명단에는 본선 진출자의 이름과 출품한 술의 이름이 함께 적혔다.
참가 자격을 갖춘 외국인도 지원할 수 있어 명단에는 영문 이름도 포함됐다. 대학생과 대학원생은 재학증명서를 제출하고 학생부로 출품했다. 본선 무대는 일반부와 학생부, 약주와 탁주로 나뉘어 운영됐다.
본선 진출작 시음회는 10월 23일과 24일 낮 12시와 오후 2시, 25일 오후 1시에 열렸다. 품평회 앞치마를 착용한 관계자들이 작은 컵에 출품주를 따라 관람객에게 건넸고, 시음대에는 술병과 각각의 이름표가 놓였다.
술 이름에 담긴 재치와 이야기
도예랑에는 관람객이 가장 좋았던 가양주에 스티커를 붙이는 투표판도 설치됐다. 투표판은 약주와 탁주로 구분됐다. 스티커가 술 이름을 가릴 정도로 모인 칸이 있는가 하면 몇 장만 붙은 칸도 있어 출품작마다 관람객 반응이 다르게 나타났다.
출품작 가운데에는 술을 뜻하는 ‘주’를 활용하거나 익숙한 표현을 비튼 이름들이 눈길을 끌었다. 일잔춘몽, 이태백이 놀던 달주, 참새가 빚은 막걸리, 입술이 닿기도 전에 이술, 하나를 보면 열을 알주 등이 대표적이었다.
학생부 약주로 출품된 ‘호미약주’는 한자로 呼美酒라고 표기됐다. 소개 카드에는 부를 호, 아름다울 미, 술 주라는 글자 풀이와 함께 재료 본연의 아름다움을 불러내는 술이라는 설명이 담겼다. 술의 맛과 빛깔뿐 아니라 이름에 담긴 의미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된 전시였다.
같은 날 오전 도예랑 무대에는 농특산물 홍보 공간도 차려졌다. 여주쌀과 고구마로 만든 지역 특산주를 소개하는 배너 옆으로 여주에서 빚은 술병과 한과가 놓였고, 도자기로 만든 꽃 장식이 함께 전시됐다.
첫 장관상 주인공은 약주 연담
10월 25일 오후 4시 축제장 남한강 방면의 나루난장 특설무대에서는 가양주 품평회 시상식이 열렸다. 2026년 품평회에서는 일반부와 학생부, 약주와 탁주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출품작에 수여하는 통합 대상이 처음 마련됐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과 상금 300만 원이 걸린 첫 통합 대상은 이재현 씨가 차지했다. 대상 출품작은 약주 연담이었다. 통합 대상을 포함해 모두 19명이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
부문별 수상 결과
| 구분 | 부문 | 수상자 | 출품작 |
|---|---|---|---|
| 통합 대상 | 약주 | 이재현 | 연담 |
| 최우수상 | 일반부 약주 | 최태환 | 최가네 석탄주 |
| 최우수상 | 일반부 탁주 | 우상우 | 금싸라기 한잔 |
| 최우수상 | 학생부 약주 | 김제혁 | 석탄주 |
| 최우수상 | 학생부 탁주 | 정성구 | 달주(月酒) |
| 우수상 | 일반부 약주 | 배정애 | 천마주 |
| 우수상 | 일반부 탁주 | 이영화 | 이토록 |
| 우수상 | 학생부 약주 | 이윤미 | 호미약주(呼美酒) |
| 우수상 | 학생부 탁주 | 박태희 | 뜬구름 |
| 특별상 | 약주 | 박삼준 | 여주설향 |
| 특별상 | 약주 | 변진영 | 화음주 |
| 특별상 | 탁주 | 김은옥 | 설기곡향주 |
| 특별상 | 탁주 | 윤영옥 | 여주설화탁주 |
| 장려상 | 일반부 약주 | 김상식 | 한잔 |
| 장려상 | 일반부 약주 | 김일중 | 청아한 |
| 장려상 | 일반부 약주 | 박중관 | 햇사레오곡주 |
| 장려상 | 일반부 탁주 | 심찬 | 수현 |
| 장려상 | 일반부 탁주 | 이지연 | 여울 |
| 장려상 | 일반부 탁주 | 하선정 | 하나를 보면 열을 알주 |
최우수상 명단에서는 일반부 약주와 학생부 약주에 모두 ‘석탄주’라는 이름이 올랐다. 석탄주는 한자로 惜呑酒라고 쓰며, ‘삼키기 아까운 술’이라는 뜻을 지닌 전통 약주다. 일반부에서는 ‘최가네 석탄주’, 학생부에서는 ‘석탄주’가 각각 약주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도예랑 밖으로 이어진 우리 술 체험
우리 술을 주제로 한 행사는 품평회장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초가지붕을 얹은 ‘여주찹쌀로 빚는 우리술’ 부스에서는 막걸리 빚기 체험이 진행됐다. 바로 옆에서는 ‘조선뱅쇼, 여주모주 시음’이 열려 또 다른 방식으로 전통주를 소개했다.
모주는 막걸리에 생강과 대추, 계피 같은 재료를 넣고 끓여 만드는 술이다. 행사장에서는 따뜻한 와인 음료인 뱅쇼에 빗대 여주모주를 ‘조선뱅쇼’라고 표현했다. 도예랑 내부의 출품주 시음과 채주 시연, 외부 부스의 막걸리 빚기와 모주 시음이 이어지면서 관람객들은 우리 술의 여러 모습을 접했다.
밥상 위 쌀에서 항아리 속 술로
품평회에서는 참가자가 직접 빚은 약주와 탁주를 맛보고, 마음에 드는 술에 스티커를 붙이는 관람객 참여가 이뤄졌다. 술덧을 대나무 체에 올려 막걸리를 거르는 모습이 공개됐고, 인근 체험 부스에서는 여주찹쌀로 막걸리를 빚는 과정도 소개됐다.
모든 출품작은 여주쌀을 중심에 두고 있었지만 병에 담긴 술의 이름과 빛깔은 같지 않았다. ‘일잔춘몽’, ‘호미약주’, ‘하나를 보면 열을 알주’처럼 출품자가 붙인 이름에는 전통 한자와 재료의 의미, 익숙한 말을 활용한 재치가 함께 담겼다.
여주쌀은 밥상에 오르는 농산물인 동시에 전통 방식의 가양주를 빚는 재료로 품평회 무대에 올랐다. 2026년에는 약주 ‘연담’이 신설된 통합 대상과 첫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았다. 여주오곡나루축제의 도예랑은 여주 농산물과 가양주 문화, 참가자들의 술 빚는 솜씨가 한데 모인 공간으로 운영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