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작골, 흙과 커피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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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작골, 흙과 커피의 온기

산 아래 자리한 송정동 구작골

경기도 이천시 송정동에는 오래된 마을의 기억과 새로운 생활문화가 함께 이어지는 구작골이 있다. 송정동은 오래전 소나무 정자가 있어 송정 또는 소정이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아리역이라는 역이 있어 마패를 지닌 공무 여행자들이 머물거나 쉬어가던 곳으로 알려졌다. 송정동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아리라는 옛 지명이 전해지고 있다.

1914년 능안과 아리, 구작골을 합쳐 송정리라고 불렀으며, 1996년 이천군이 이천시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송정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구작골은 오늘날 송정동 송정3통에 해당한다.

구작골에서 태어나 자란 주민 엄재용 씨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마을 어르신들은 이곳을 구대골이라고 불렀다. 아홉 대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고 마을이 산 아래 골짜기 옆에 자리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이야기다. 이 명칭이 오랜 세월 구전되는 과정에서 구작골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구작골은 도시의 생활 기반과 산 아래 마을의 고요한 풍경이 맞닿아 있는 곳이다. 이천라온프라이빗 아파트와 송정동양파라곤 아파트, 이천송정 신일아파트가 마을 주변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현재는 신축 주택이 늘었지만, 몇 년 전까지는 지은 지 수십 년 된 집들이 골목 곳곳에 남아 있었다. 주택 외벽에 놓인 국화 화분과 가을꽃에서는 주민들이 가꿔 온 정돈된 생활 풍경을 엿볼 수 있다.

크레파스로 문양을 그리는 플레잉디쉬

구작골 안에는 조원석 도자작가가 작업하는 플레잉디쉬 공방이 자리한다. 마을 풍경과 어우러지는 건물 안에서 도자 식기와 오브제가 제작된다. 이천의 도예가 상당수가 신둔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조 작가는 이천에서 10여 년 동안 작업한 뒤 4년 전 구작골에 정착했다.

조 작가는 송정동의 장점으로 생활 편의성과 조용한 환경이 공존한다는 점을 꼽았다. 공방 인근에 마트와 농협 등 생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으면서도 마을 안으로 들어오면 시골처럼 아늑하다는 설명이다. 밤에는 건너편 아파트의 불빛이 보이며, 가까운 곳에 도재상이 있고 이천의 도자 기반도 탄탄하게 구축돼 있다고 밝혔다.

1985년생인 조 작가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했으며 20년 넘게 흙을 다뤄 왔다. 창업아이디어 공모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고, 2015년에는 백자에 한국 전통 양각 기법을 접목한 작품으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선과 KCDF 공예스타상품공모전 수상 기록을 남겼다.

2016년에는 중국 초대전 OPENWORK에 참여했으며, 2017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선비의 식탁 전시에도 작품을 선보였다. 전통 도자 기법을 바탕으로 국내외 전시와 공모전에서 활동 범위를 넓혀 온 이력이다.

2018년부터는 도자기용 크레파스로 문양을 입히는 작업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하얀 도자기 표면에 선명한 색과 정교한 무늬를 더해 식기와 오브제를 제작한다. 어린 시절 흰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플레잉디쉬라는 이름도 조 작가가 직접 지었다. 작업의 핵심 모티브는 유희로운 세계다. 전통이 지닌 깊이를 유지하면서 자유롭고 재치 있는 이미지를 도자 작품에 담는다는 의미다. 공방에서는 흙과 불이라는 전통적인 재료와 공정 위에 크레파스의 친숙한 감각이 더해진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조 작가는 도예 작업과 함께 예술인 인터뷰 영상과 브랜드 영상 등 미디어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도자기를 만드는 손의 감각뿐 아니라 작품과 사람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활동까지 이어가는 셈이다.

골목 끝에서 만나는 이천의 들녘

구작골 골목에서 이천라온프라이빗 아파트를 지나면 큰 도로와 넓은 들녘이 이어진다. 가을에는 추수를 앞둔 논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이천 농촌의 계절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논 너머에는 1997년부터 지역 이웃을 위한 나눔 활동을 이어온 주사랑교회도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안쪽의 주택과 도자 공방, 주변 아파트와 들녘이 한 시야에 이어지면서 송정동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오래된 지명과 주민들의 기억이 남은 골짜기 마을 곁으로 새로운 주거 공간과 문화 공간이 들어선 모습이다.

두 세대가 함께 내리는 커피

도로를 따라가면 붉은 벽돌 외관의 커피아뜰리에 이천본점이 나온다. 이곳은 믹스커피가 대중적이었고 원두커피와 아메리카노라는 표현이 지금보다 낯설었던 18년 전, 송정동 수림2차아파트 맞은편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3년 전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정원을 함께 조성했다.

커피아뜰리에를 운영하는 박소연 대표는 국제 커피감정사이자 국제 로스팅 교육감독관으로 활동해 왔으며 국내외 커피 대회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25개국 미각심사단 미슐랭 선정 카페로 소개됐고,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 연속 콜럼버스 가이드 대한민국 맛집에 이름을 올렸다. 커피 분야의 활동과 함께 봉사 이력도 이어왔다.

몇 년 전부터는 박 대표의 아들 고산아 바리스타가 합류했다. 한 공간에서 두 세대가 함께 커피를 내리며 18년 동안 이어진 경험을 다음 세대로 연결하고 있다. 기본 커피와 함께 여러 시그니처 음료를 선보이며 메뉴의 폭을 넓혔다.

특히 밀폐된 환경에서 커피 원두를 과육과 함께 발효해 복합적인 향미를 끌어내는 무산소 발효 커피도 다룬다. 발효 과정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향을 경험하려는 커피 애호가들이 찾는 메뉴다. 붉은 벽돌 건물과 정원, 실내에 번지는 커피 향이 구작골 주변의 차분한 분위기와 연결된다.

오래된 마을과 새로운 문화의 연결

구작골에서는 송정과 아리, 구대골로 이어지는 옛 지명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동시에 젊은 도예가의 공방과 두 세대 바리스타가 함께 운영하는 카페처럼 현재의 생활문화도 자리 잡고 있다.

산 아래 골짜기에 모여 살던 주민들의 기억은 아파트와 신축 주택이 들어선 뒤에도 마을 이름과 골목에 남아 있다. 국화와 가을꽃이 놓인 주택가를 지나면 크레파스 문양을 품은 도자기가 나타나고, 골목 밖에서는 황금빛 들녘과 커피 공간이 이어진다.

구작골의 특징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 마을 안에서 나란히 이어진다는 데 있다. 주민들의 구전으로 남은 이야기, 전통 기법을 새롭게 풀어낸 도자 작업, 두 세대가 함께 쌓아 가는 커피 문화가 송정동의 현재를 구성한다.

주요 장소 정보

장소위치특징
구작골삼거리경기도 이천시 송정동구작골로 이어지는 마을 길목
구작골경기도 이천시 송정동송정3통에 해당하는 산 아래 마을
플레잉디쉬경기도 이천시 증신로325번길 96조원석 도자작가의 작업 공간
커피아뜰리에 이천본점경기도 이천시 증신로 315 1층 102호박소연 대표와 고산아 바리스타가 함께하는 커피 공간
구작골, 흙과 커피의 온기
구작골, 흙과 커피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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