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쌀 품은 민화의 변신

전통 민화의 상징과 여주의 쌀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전시가 열린다. 아트뮤지엄 려는 2026년 9월 30일부터 10월 18일까지 제10회 여주민화협회·한국민화협회 여주지회 회원전 《민화를 누리다》를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옛 그림의 도상과 화법을 충실하게 따른 작품부터 현대인의 일상과 지역의 특색을 담아낸 창작민화까지 폭넓게 펼쳐진다. 특히 조선 왕실에 올리던 진상미의 역사를 민화로 풀어낸 여주쌀 협동작품 여덟 점이 이번 전시의 뚜렷한 중심을 이룬다.
쌀 포대로 전한 개막 축하
아트뮤지엄 려는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WEST 퍼블릭마켓 광장 한쪽에 자리한 여주시 직영 미술관이다. 초록색 차양이 달린 건물로, 2019년 11월 문을 연 뒤 지역 작가의 전시를 꾸준히 소개하며 시민과 지역 미술을 연결해 왔다.
전시장 입구 유리벽에는 이번 회원전의 취지를 설명하는 서문이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10kg짜리 쌀 포대 일곱 개가 나란히 놓였다. 각 포대에는 전시 개최를 축하하는 분홍색 리본이 달렸다. 일반적인 화환 대신 지역을 대표하는 쌀이 놓이면서 전시가 다루는 여주의 정체성을 입구부터 드러낸다.
여주민화협회는 2016년 창립한 뒤 매년 정기 회원전을 이어왔다. 2026년에는 열 번째 정기 회원전을 맞았으며, 김경옥 회장을 비롯한 회원 작가 18명이 참여했다. 한 해 한 해 쌓아온 회원전의 흐름이 열 번째 전시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분명하다.
전통의 문법을 지킨 민화
민화는 생활공간을 꾸미는 역할과 함께 복, 장수 등 삶을 향한 바람을 그림에 담아낸 전통 회화다. 이번 전시장 안쪽 벽에는 옛 그림의 소재와 표현 방식을 충실하게 따른 작품들이 이어진다.
노을순 작가의 〈봉황도〉, 노경애 작가의 〈도원행주도〉, 김옥경 작가의 〈팔준도〉는 세로로 긴 화폭에 나란히 걸렸다. 서로 다른 소재를 선택한 작품들이 전통 민화 특유의 구성과 색채를 보여준다.
박정자 작가의 〈즐거운 잔치〉는 가로 110cm, 세로 135cm의 화폭에 요지연도를 담은 작품이다. 요지연도는 중국 주나라 목왕이 서왕모를 만나 신선들과 잔치를 벌였다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구름 사이 누각에 모인 인물과 말을 타고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화면 안에 세밀하게 배치됐다. 관람객들은 넓은 화폭을 따라가며 장면마다 등장하는 인물과 풍경을 차례로 살펴보게 된다.
네 가지 색으로 마주한 호랑이
호랑이는 이번 회원전에서 여러 작가가 선택한 소재다. 그중 박찬애 작가의 작품은 전시장 한쪽 벽을 크게 채운다. 가로 140cm, 세로 200cm 크기의 〈수호의 땅 영월, 희망의 날개짓〉 두 폭 사이에 〈호랑이 사형제〉가 자리한다.
〈호랑이 사형제〉는 고개를 숙인 채 정면을 바라보는 맹호의 모습을 초록색, 보라색, 갈색, 파란색으로 각각 표현한 연작이다. 동일한 호랑이 형상이 네 가지 색으로 변주되면서 한 소재가 서로 다른 인상으로 이어진다. 작품 앞에서는 크고 선명한 호랑이들의 시선이 전시장 분위기를 단단하게 붙잡는다.
민화 속 호랑이는 10월 10일 열리는 이론 특강의 주제로도 이어진다. 전통 회화의 호랑이가 오늘날 문화 콘텐츠의 캐릭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는 자리다.
전통에서 확장된 창작민화
박인하 작가의 〈night flight〉는 전통 도상을 그대로 따르는 작품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푸른 하늘과 구름 사이를 나는 제비들이 화면을 채우는 창작민화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불안 앞에서 도망치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를 그림에 담고자 했다. 전통민화가 지닌 상징적 표현을 바탕에 두면서도 현대인이 겪는 감정과 일상의 모습을 새로운 장면으로 풀어냈다.
신륵사와 만난 백수백복도
여주의 장소가 화면에 직접 등장하는 작품도 있다. 김진정 작가의 〈신륵사 백수백복도 대련〉이다. 백수백복도는 목숨 수 자와 복 복 자를 여러 서체로 반복해 구성한 그림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는 검은 바탕 위에 여러 색으로 쓴 수와 복 글자가 펼쳐진다. 글자 사이에는 신륵사의 다층전탑과 오층석탑이 보이며 양옆에는 모란이 피어 있다.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전통적인 구성 안에 여주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을 담았다. 작품에는 여주의 아름다움과 풍요가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여주쌀 민화의 세 번째 흐름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부분은 여주민화협회가 여주시 농산업공동브랜드활성화센터와 함께 제작한 협동작품 여덟 점이다. 작품 설명에는 참여 작가를 각각 구분하지 않고 여주민화협회 협동작품으로 표기했다.
여주쌀 민화 프로젝트는 2024년 12월 여주쌀을 주제로 시작됐다. 2025년에는 농업 전반으로 범위를 넓혔고, 2026년에는 조선 왕실에 올렸던 진상미의 역사를 다뤘다. 이번에 공개된 여덟 작품은 이 프로젝트의 세 번째 흐름에 해당한다.
전통 민화와 궁중 회화에 등장하는 왕실의 상징은 여주쌀과 결합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익숙한 문자와 문양, 궁궐과 왕릉의 풍경 안에 쌀밥과 벼 이삭, 볏짚과 떡이 들어가면서 여주의 농업 문화가 민화의 언어로 표현된다.
왕실 상징에 더해진 벼 이삭
협동작품 〈왕〉은 한글 왕 자를 화면에 크게 쓰고, 글자를 구성하는 두 개의 이응 안을 쌀밥 한 그릇과 벼 이삭으로 채웠다. 한글의 형태를 활용해 왕실을 상징하는 진상미와 여주쌀을 직관적으로 연결한 작품이다.
〈여주쌀 일월오봉도〉는 임금의 자리 뒤에 놓였던 일월오봉도의 다섯 봉우리에 벼 이삭을 더했다. 해와 달, 산봉우리로 구성된 권위의 상징 속에 농업의 결실을 함께 담은 것이다.
〈여주쌀 곤룡포〉에서는 붉은 바탕 위 다섯 발가락을 지닌 용 주변의 구름이 벼 이삭으로 바뀌었다. 왕을 상징하는 곤룡포의 형식과 여주쌀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서 맞물리게 했다.
궁궐과 왕릉에 스며든 쌀 문화
궁궐과 왕릉을 소재로 삼은 작품에서도 쌀의 상징이 이어진다. 〈달콤한 단청〉은 창덕궁 희정당 입구 천장에 있는 단청 문양의 칸마다 여주쌀로 빚은 떡을 넣었다. 궁궐의 장식 문양과 여주쌀로 만든 먹거리가 한 장면 안에서 만난다.
〈여주쌀 금줄〉은 경복궁 교태전 굴뚝 앞에 볏짚으로 꼰 금줄을 걸고 그 사이에 이삭을 끼운 모습으로 구성했다. 금줄은 아이의 탄생을 알리고 부정을 막기 위해 대문 등에 걸었던 새끼줄이다. 작품은 궁궐이라는 공간에 탄생과 보호의 뜻을 지닌 생활 풍속을 함께 배치했다.
〈여주쌀 위토답〉은 세종대왕릉 홍살문 주변을 누렇게 익은 논으로 채웠다. 위토답은 왕릉의 제례와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두었던 논을 뜻한다. 왕릉의 역사와 논의 기능을 여주의 가을 풍경 안에서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린왕자와 봉황의 새로운 변주
협동작품이 전통 소재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어린왕자〉에서는 곤룡포를 입은 임금이 작은 별 위에서 벼를 돌본다. 작품 설명에는 대한민국을 넘어 우주 최고의 여주쌀이라는 재치 있는 표현도 담겼다. 왕실과 진상미의 관계를 현대인에게 익숙한 이미지로 풀어낸 구성이다.
〈여주쌀 봉황도〉에서는 서로 마주 보는 봉황 두 마리의 꼬리가 벼 이삭으로 이어진다. 전통민화의 대표 소재인 봉황과 여주의 농업을 결합해 화려하면서도 풍성한 장면을 만들었다.
협동작품과 별도로 이경미 작가는 〈여주쌀 건강밥상〉을 출품했다. 벼 이삭과 고구마, 땅콩, 가지가 한 그릇 안에 담겼다. 여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밥상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통해 한데 모인다.
주말 체험과 민화 호랑이 특강
전시 기간의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인 10월 9일에는 무료 민화 체험이 진행된다. 체험은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운영되며 준비된 재료가 모두 소진되면 마감된다.
10월 10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전시장 안에서 민화 이론 특강이 열린다. 미술평론가인 정병모 한국민화학교 교장이 천의 얼굴, 민화 호랑이의 캐릭터 호돌이에서 케이컬처의 더피까지를 주제로 강연한다.
더피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호랑이 캐릭터다. 특강은 민화 속 호랑이의 다양한 모습과 현대 문화 속 캐릭터를 하나의 주제 안에서 다룬다.
전시 관람 정보
| 전시명 | 제10회 여주민화협회·한국민화협회 여주지회 회원전 《민화를 누리다》 |
|---|---|
| 전시 기간 | 2026년 9월 30일 수요일부터 10월 18일 일요일까지 |
| 관람 시간 |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후 5시 30분 입장 마감 |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 관람료 | 무료 |
| 장소 | 아트뮤지엄 려, 경기도 여주시 명품로 370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WEST 퍼블릭마켓 내 H주차장 앞 |
| 문의 | 아트뮤지엄 려 031-881-9764 |
전시는 10월 18일 막을 내린다. 닷새 뒤인 10월 23일부터는 신륵사관광지에서 여주오곡나루축제가 시작된다. 아트뮤지엄 려의 전시장에서는 햅쌀이 나오는 계절에 앞서 여주쌀이 전통민화와 창작민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열 번째 회원전을 맞은 《민화를 누리다》는 전통 회화의 상징을 지키면서 여주쌀과 궁궐, 왕릉, 지역 농산물을 한 폭의 이야기로 연결한 전시다. 전시장에 놓인 실제 쌀 포대에서 시작된 흐름은 일월오봉도와 곤룡포, 단청과 금줄, 세종대왕릉을 거쳐 봉황과 어린왕자의 세계까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