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나무는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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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나무는 기억한다

시민이 이어 온 광명환경영화제

제4회 광명환경영화제가 메가박스 광명소하 3관에서 열렸다. 광명환경영화제는 광명자치대학 탄소중립학과 졸업생들의 후속 조직인 탄소중립시민센터가 주관하는 시민 중심의 환경문화 행사다. 졸업 이후에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며 네 번째 영화제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행사장에는 도시 개발과 환경 보전의 관계를 함께 생각하려는 시민들이 자리했다. 상영관에서는 영화 관람에 이어 감독과 전문가, 관객이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진행됐다. 영화 한 편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광명시가 마주한 재건축과 도시숲 문제를 시민의 눈높이에서 살펴보는 자리로 구성됐다.

재개발 현장을 기록한 콘크리트 녹색섬

이날 상영작은 이성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콘크리트 녹색섬>이었다. 작품은 서울 개포주공아파트 재개발 현장을 배경으로, 개발 과정에서 베어지거나 사라지는 오래된 나무와 그 공간에 쌓인 기억을 기록했다.

1980년대 초반 조성된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은 약 40년 동안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 성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나무는 아파트 건물보다 높이 자랐고, 주민들의 수많은 기억이 머무는 풍경이 됐다. 그러나 재건축이 시작되자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 온 나무들은 경제성과 비용의 논리 속에서 보존되지 못한 채 잘려 나갔다. 카메라는 이러한 변화의 현장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따라간다.

작품 제목인 ‘콘크리트 녹색섬’은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 섬처럼 남아 있던 22그루의 메타세콰이어를 가리킨다. 재개발로 많은 나무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감독이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대상이다. 영화는 아름드리나무를 단순한 조경 시설로 바라보지 않고, 주민의 삶과 장소의 역사를 함께 간직한 존재로 조명한다.

개봉 전부터 인정받은 작품성

<콘크리트 녹색섬>은 개봉 전부터 기획력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22년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앤캐치 옥랑문화상을 받았으며, 2023년 제20회 EBS국제다큐영화제 인더스트리 초이스상도 수상했다.

영화의 원작이 된 기획 역시 2022년 생명문화 출판 콘텐츠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도시의 오래된 나무와 공동체의 기억을 연결한 문제의식이 영화 제작 이전부터 주목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가 광명시에 던진 질문

영화 상영 뒤에는 감독과의 대화가 마련됐다. 이성민 감독과 함께 광명자치대학 탄소중립학과 김성현 전 학과장, 광명시민정원사협동조합 송기영 이사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관객들도 대화에 참여해 도시숲과 재개발, 탄소중립, 지역의 기억을 둘러싼 생각을 나눴다.

참석자들은 영화가 다룬 도시숲의 문제가 현재 광명시가 고민해야 할 사안과 맞닿아 있다는 데 공감했다. 광명시의 재건축 역사와 개발 과정에서 사라질 수 있는 녹지, 도시 안에서 지켜야 할 공동의 기억이 대화의 중심에 놓였다. 현장에서는 새로운 주거 환경의 필요성과 기존 자연환경 보전이라는 두 과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관한 의견이 이어졌다.

깨끗하고 편리한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개발과 오래된 나무의 보존은 어느 한쪽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날 대화는 양자택일에 머무르기보다 개발과 보존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탄소중립도시와 사회연대경제도시를 지향하는 광명시의 기조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오래된 나무가 지닌 생태적 가치

재개발 과정에서 오래된 대형 수목이 사라지는 문제는 주민이 느끼는 아쉬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랜 기간 성장한 나무 한 그루는 도심 열섬현상을 완화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기여하며,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기존의 아름드리나무를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큰 나무를 모두 제거한 뒤 어린 묘목으로 대체하면 오랜 시간 축적된 생태적 기능을 곧바로 회복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도시의 나무는 경관을 꾸미는 요소를 넘어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환경 자원이라는 점이 영화와 대화 전반에서 부각됐다.

주거지 주변에 녹지가 풍부한 이른바 ‘숲세권’의 가치를 선호하면서도 정작 개발 과정에서는 기존의 큰 나무를 없애는 모순 역시 주요 화두가 됐다. 새로운 단지에 나무를 심는 일과 이미 성장한 나무를 보전하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인 만큼, 정비사업 초기부터 기존 수목의 가치를 살피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개발과 보존의 상생 방안

감독과 패널, 관객들은 오래된 나무를 지키면서 주거 환경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논의했다. 현장에서 제시된 핵심 의견은 다음과 같다.

  • 재개발과 재건축 정비계획 단계부터 수목 환경 평가를 의무화하고, 보존 가치가 높은 아름드리나무를 미리 지정하는 방안
  • 단지 안의 공원과 녹지 축을 설계할 때 기존 수목의 위치를 최대한 반영하는 방안
  • 기존 위치에서 보존하기 어려운 나무는 단지 안으로 안전하게 옮길 수 있도록 이식 관련 기술적·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

이 같은 방안은 공사가 시작된 뒤 보존 여부를 검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계획 수립 단계부터 나무를 도시 자산으로 다뤄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둔다. 개발 설계와 수목 보전 계획을 함께 마련해야 불필요한 훼손을 줄이고 녹지의 연속성도 살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기록에서 시작되는 지역의 보존

제도 개선과 함께 시민의 관심도 중요한 과제로 언급됐다. 이성민 감독은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사라져 가는 가치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 영화를 완성했다. 일상적인 기록이 한 지역의 변화와 상실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로 이어진 것이다.

시민들이 동네의 나무와 오래된 공간을 기억하고 이야기로 남기는 행위는 보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제시됐다. 어떤 나무가 어디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주민과 함께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면, 개발 과정에서 그 가치가 충분히 논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심의 나무는 관상용 식물에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과 함께 숨 쉬며 도시의 시간을 축적해 온 이웃이자, 도심 생태계의 건강을 지탱하는 환경 자원이다. 영화제는 편리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려질 수 있는 생태적·정서적 손실을 돌아보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씨앗연필에 담긴 영화제의 메시지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에게는 몽당연필이 된 뒤 흙에 심으면 싹을 틔울 수 있는 씨앗연필이 전달됐다. 연필 끝에는 방울토마토와 바질 씨앗이 담겼다.

씨앗연필은 영화와 대화에서 다룬 환경의 가치를 일상으로 연결하는 작은 상징물이었다. 이날 영화제는 재개발 현장에서 사라지는 나무의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도시의 기억과 생태를 지키기 위해 시민과 행정,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제4회 광명환경영화제는 오래된 나무를 보존하는 일이 과거의 풍경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가 미래 세대에 어떤 환경을 건넬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임을 되짚었다. 개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수목의 생태적 가치와 주민의 기억을 계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고려하는 것, 그것이 지속가능한 도시를 향한 논의의 핵심으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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