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기 의사, 부민관 투탄 의거의 불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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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기 의사, 부민관 투탄 의거의 불굴 정신

조문기 의사의 생애와 독립운동

조문기 의사는 1927년 5월 19일 경기도 수원군 매송면 야목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병길과 어머니 연안 이씨 사이의 차남으로, 일제강점기 후반인 1940년대에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1945년 7월 24일 서울 부민관에서 일어난 부민관 투탄 의거를 주도하는 등 일제의 식민 지배에 맞서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광복 이후에도 사회와 민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갔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조문기 의사는 2008년 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일제강점기와 항일운동의 배경

조문기 의사가 태어난 1927년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였다. 일제는 조선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며 감시와 차별, 탄압을 일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 속에서도 독립을 위한 항일운동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1926년 6월 10일에는 순종의 국장일을 계기로 학생들이 주도한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1929년에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조문기 의사의 독립운동 활동

1942년 10월, 조문기 의사는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에 훈련공으로 강제 수용되었다. 이곳에서 한국인 노무자에 대한 멸시와 탄압을 경험하며 1943년에는 항일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유만수와 함께 지명수배를 피해 귀국하였고, 1945년 5월에는 유만수, 강윤국, 권준, 우동학 등과 함께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해 대일 투쟁을 결의했다.

1945년 7월 24일, 서울 부민관에서 친일 단체 대의당이 주최한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렸다. 조선총독과 조선군사령관 등 일제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이 행사에 조문기 의사와 동지들은 폭탄을 설치해 부민관 투탄 의거를 실행했다. 폭발로 인해 대회는 무산되었고, 조문기 의사 일행은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현장을 탈출했다. 이 의거는 광복을 불과 20여 일 앞둔 시점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항일 의거로 기록된다.

광복 이후의 활동과 평가

광복 후 조문기 의사는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활동을 비롯해 사회와 민족 문제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1959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암살, 정부전복 음모 조작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1990년에는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으며, 1999년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힘썼다.

조문기 의사의 모교인 화성시 매송초등학교에는 그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14년 7월 24일에는 학교 교정에서 동상 제막식이 열렸으며, 조문기 의사가 남긴 글귀가 소개되었다. 글귀는 다음과 같다.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

이 글귀는 조문기 의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깊은 책임감과 겸손한 마음을 보여준다.

조문기 의사의 유산과 기념

조문기 의사의 동상과 기념비는 그의 삶과 독립운동을 기억하고 그 뜻을 알리는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화성시 매송초등학교에 세워진 이 기념물들은 학생들과 지역사회에 조문기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전하며, 독립운동의 역사와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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