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시간이 만든 여섯 시선

평택시 지산로140번길 243에 자리한 PREFER 갤러리에서 포토 335 제3회 사진전이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포토 335 소속 김인복, 박정아, 손정수, 송옥순, 안형진, 장일미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빛과 색, 기억과 생명,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내며 사진에 회화적인 감각을 더했다. 같은 사진 매체를 사용하면서도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과 표현 방식은 뚜렷하게 나뉘었다.
여섯 작가가 기록한 특별한 순간
포토 335 박정아 회장은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진을 통해 마음을 나눠 온 시간이 세 번째 전시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참여 작가들은 저마다의 시선과 감성으로 포착한 순간을 서로 다른 장르와 개성으로 펼쳐 보였다.
이번 사진전의 중심에는 피사체 자체뿐 아니라 그 장면을 바라본 작가의 마음이 놓여 있다. 하나의 대상도 작가의 감성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이 작품마다 드러났다. 사진에 머문 빛과 시간은 여섯 작가의 경험과 맞물리며 각기 다른 이야기로 확장됐다.
갤러리 안에서는 선명한 색채를 활용한 추상적인 장면부터 절제된 흑백사진까지 폭넓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작품 사이를 따라가면 현실적인 풍경이 추상으로 바뀌고, 꽃의 짧은 생명은 시간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대나무 숲과 다랑논, 오래된 골목과 인물의 표정도 각기 다른 감정의 결을 드러냈다.
유리 위에서 다시 태어난 풍경
박정아 작가의 REFRACT 빛의 조각들은 유리 천장에 비친 지상의 풍경이 빛과 색, 선으로 변하는 순간을 담은 작품이다. 익숙한 실물은 굴곡진 유리 표면을 통과하며 여러 이미지로 나뉘고, 현실의 모습과 환영처럼 보이는 장면이 한 화면 안에서 교차한다.
작품 속 빛은 사물의 형태를 흔들고 잠들어 있던 색을 깨운다. 유리 표면을 따라 흐르는 곡선과 색채가 서로 겹치고, 번져 나가는 빛은 화면에 리듬과 깊이를 만든다. 본래의 형상은 여러 조각으로 해체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흩어진 형상은 원래 풍경이 지녔던 시간을 품은 채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난다. 작가는 이 변화 속에서 일상이 낯선 이미지로 전환되는 한 장면을 바라봤다. 현실에서 출발한 사진이면서도 색과 선의 구성은 한 폭의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꽃의 생명과 사라짐을 바라보다
송옥순 작가의 시선 연작은 곧 사라질 꽃의 아름다움과 그 앞에서 느낀 감정을 기록했다. 꽃은 피어 있는 동안 생명의 존재감을 온전히 드러내지만, 가장 빛나는 시간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작가에게 사진은 짧은 생명과 마주한 시선인 동시에 다가올 사라짐을 예감한 마음의 기록이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은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도 맞닿아 있다. 작가는 꽃이 지닌 생명의 빛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과 시간을 함께 돌아봤다.
짧기 때문에 더욱 깊이 남는 아름다움이 사진 안에 머문다. 작품은 꽃의 외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생명이 가장 환하게 빛나는 순간과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려는 마음을 함께 담아냈다.
대숲의 침묵을 깨우는 한 줄기 빛
김인복 작가의 빛으로 듣는 숲의 속삭임은 어두운 대나무 숲을 통과하는 미세한 빛을 포착한 작품이다. 곧게 뻗은 대나무 줄기와 잎끝에 빛이 스며들면서 정적인 숲에 움직임이 생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받은 잎사귀는 홀로 조명을 받은 듯 모습을 드러낸다. 잎끝을 스치는 빛의 선과 대나무 줄기의 수직적인 구도가 리듬을 이루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은 숲이 품어 온 시간의 결을 보여준다.
어둠은 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바람과 빛이 남긴 궤적은 멈춰 두고 싶은 순간으로 바뀐다. 작가는 숲 전체를 설명하기보다 빛이 잠시 머문 흔적을 선택했다. 그 결과 익숙한 대나무는 식물의 모습을 넘어 하나의 몸짓과 호흡, 길게 이어지는 선율처럼 다가온다.
시간이 덧입힌 기억의 흔적
안형진 작가의 기억의 흔적은 시간이 흐르며 달라지는 기억의 성질을 다룬다. 분명하다고 믿었던 장면도 시간이 지나면 구체적인 모습보다 희미한 잔상과 감정으로 남는다.
기억의 틈에서 떠오른 장면이 실제 과거와 같은지, 아니면 마음속에서 새롭게 가공된 모습인지는 명확히 나누기 어렵다. 작가는 사람이 간직한 기억이 과거를 정확히 복원한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추억과 사연, 죄책감과 그리움이 더해지면 기억은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작품은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감정이 겹쳐지는 지점을 보여주며, 기억이 단순히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한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풀어냈다.
자연과 삶이 층층이 쌓인 다랑논
장일미 작가는 무캉차이의 다랑논을 사진에 담았다. 산의 지형을 따라 층층이 이어진 논은 자연이 만든 산세와 사람이 이어 온 노동이 만나 완성된 풍경이다.
다랑논은 계절에 따라 빛과 물, 안개와 구름이 어우러지면서 매 순간 다른 표정을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화면에 담고자 했다.
굽이치는 논의 곡선은 자연의 리듬을 보여주는 동시에 땅을 묵묵히 일군 사람들의 삶과 기다림을 드러낸다. 반복되는 곡선과 층은 장대한 풍경을 이루지만, 그 안에는 오랜 노동과 생활의 시간이 촘촘히 스며 있다.
색을 덜어내고 남긴 감정
손정수 작가의 고요가 머무는 시간은 흑백사진을 통해 빛과 그림자,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 작품이다. 빠르게 흐르는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내면의 시간을 차분하게 바라본다.
작가는 화려한 색채를 덜어내고 화면에 필요한 요소만 남겼다. 침묵 속에 머무는 시선과 오래된 골목이 간직한 흔적, 빗방울을 기다리는 순간이 흑백의 명암 속에서 선명해진다. 말과 사람이 나누는 소리 없는 교감도 작품의 중요한 장면으로 자리한다.
절제된 화면은 익숙한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한 장의 사진이 빠른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보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이끄는 작은 쉼표 역할을 한다.
사진으로 이어진 빛과 시간
전시는 여섯 작가가 같은 시대와 공간을 저마다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는지 보여줬다. 유리에 굴절된 도시의 풍경, 피고 지는 꽃, 어둠 속 대숲, 변형되는 기억, 산세를 따라 펼쳐진 다랑논, 고요한 흑백의 장면은 서로 다른 주제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작품에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을 붙잡아 오래 바라보려는 태도가 공통으로 흐른다. 빛은 풍경을 바꾸고, 시간은 기억을 덧입히며, 작가의 시선은 평범한 대상을 새로운 이야기로 전환했다.
PREFER 갤러리의 전시 공간에서는 색채가 강한 작품과 차분한 흑백사진이 서로 다른 분위기를 형성했다. 관람 동선을 따라 작품을 살피면 빛과 어둠, 생명과 사라짐, 자연과 인간, 현실과 기억이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포토 335 제3회 사진전은 사진이 한순간의 기록을 넘어 작가의 감성과 사유를 전하는 매체라는 점을 보여준 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