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에 새긴 나옹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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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에 새긴 나옹의 지혜

고려 말 고승 나옹선사의 가르침이 여주 서예가들의 붓끝에서 작품으로 되살아났다. 여강서도회가 주최한 제13회 서예전 ‘모기야, 몰랐니’가 2026년 9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여주목마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나옹선사의 게송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게송은 부처의 공덕과 가르침을 기리고 되새기는 내용을 한시 형식의 운문으로 지은 글이다. 전시장에는 오랜 시간 서예를 익혀 온 회원들의 서로 다른 필체와 해석이 어우러지며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모기 한 마리에 담긴 절제의 가르침

전시 제목인 ‘모기야, 몰랐니’는 나옹선사의 게송 ‘모기’에서 비롯됐다. 이 글은 자신의 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피를 지나치게 먹은 모기가 결국 날지 못하게 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어 남의 소중한 것을 탐하지 말아야 하며, 지나친 욕심은 언젠가 되돌려 놓아야 할 때가 온다는 가르침을 전한다.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지 못한 채 욕심을 부리면 그 욕심이 결국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강서도회는 이처럼 탐욕을 경계하고 절제하는 삶의 태도를 관람객과 나누기 위해 ‘모기야, 몰랐니’를 전시의 표제로 정했다. 짧은 게송에 담긴 뜻은 회원들의 각기 다른 붓놀림을 거쳐 여러 모습의 서예 작품으로 펼쳐졌다.

1990년 시작된 여강서도회의 발걸음

여강서도회는 사농 전기중 서예가의 제자들로 구성된 단체다. 1990년 첫 전시회를 연 뒤 작품 활동을 이어 왔으며, 격식을 갖춘 정기 전시는 이번에 13회를 맞았다. 이와 별도로 작은 규모의 전시도 해마다 빠짐없이 진행해 왔다.

제13회 서예전에는 회원 15명이 참여했다. 회원들은 전해지는 나옹선사의 가르침 약 330편 가운데 40편을 골라 서예 작품으로 완성했다. 한 가지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작품마다 글씨의 흐름과 힘, 여백의 구성이 달라 회원별 개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전기중 서예가는 처음에는 서예 원로와 제자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시작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작품 활동을 해 온 제자들이 전시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모와 관계없이 작품 발표를 멈추지 않고 이어 온 꾸준함이 오늘날 여강서도회의 기반이 됐다는 취지다.

서예로 다듬는 마음과 자기수양

금농 강한호 여강서도회 회장은 세종대교에서 바라본 강의 노을에 매력을 느껴 여주에 정착했다. 이후 전기중 서예가가 진행한 여주박물관 교육에 참여하면서 서예를 시작했다.

강 회장은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을 수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학 고서를 읽으며 삶의 진리를 찾고, 그 내용을 마음의 지표로 삼아 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지식의 습득이 강조되는 시대일수록 나옹선사의 무소유 정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뜻을 전했다. 이번 전시가 욕심을 덜어내는 자세를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기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해설로 가까워진 붓글씨의 뜻

전시장에서는 글씨의 조형미뿐 아니라 작품에 담긴 뜻을 함께 나누는 모습도 이어졌다. 서예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도 해설을 통해 게송의 배경과 의미를 살피며 작품을 감상했다.

내국인 지인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카자흐스탄 출신 이민자 가족도 자녀와 작품을 둘러봤다. 이 관람객은 서예에 관한 지식이 많지 않았지만, 글에 담긴 내용을 해설로 들으며 깨우침을 얻었다고 전했다. 작품의 글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서예가 지닌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낯선 한문과 붓글씨 앞에서 관람객들은 작품의 설명을 차분히 듣고 획과 여백을 번갈아 살폈다. 글의 의미를 이해한 뒤 작품을 다시 바라보면서 서예가 단순히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생각과 가르침을 전달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자의 필체로 깊어진 여주 서예

여강서도회 회원들의 작품에는 오랜 시간 다듬어 온 기량과 개성이 담겼다. 같은 나옹선사의 가르침을 다루면서도 회원마다 획의 굵기와 속도, 글자의 배치가 달라 한 편의 글이 여러 예술적 표현으로 확장됐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신륵사 석종비에 새겨진 보제존자 나옹왕사의 시문을 새롭게 분석해 작품에 담았다. 여주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을 서예 작품으로 풀어내면서 지역의 전통문화와 예술 활동을 한자리에서 연결했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꾸준한 노력은 서예의 저변을 넓히고 여주 지역 서예 문화의 깊이를 더하는 바탕이 됐다. 1990년부터 이어진 여강서도회의 작품 활동은 전통 서예를 현재의 관람객과 나누며 지역 문화예술에 활력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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