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묻는 무대 호명

사형 집행을 한 시간 앞둔 작은 방. 그 안에서 ‘사형수’, ‘신부’, ‘집행인’으로 불리는 세 사람이 팽팽한 대화를 이어간다. 연극 ‘호명’은 한 사람을 규정하는 이름과 호칭이 무엇인지 무대 위에서 차분하게 되묻는 작품이다.
제작집단 프로젝트 789가 선보인 ‘호명’은 의정부시 둔야로49번길에 있는 예술공간 휴서사에서 열린 ‘제2회 휴서사 창작연극제’ 참가작이다. 작은 극장을 채운 밀도 높은 대화와 인물 사이의 긴장은 공연이 전하려는 질문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대학생의 질문에서 출발한 연극제
제2회 휴서사 창작연극제는 2026년 10월 14일부터 11월 1일까지 3주 동안 진행됐다. 경기 북부 지역의 청년 예술단체 6곳이 참여해 매주 두 작품씩, 모두 6편을 무대에 올리는 방식으로 마련됐다.
연극제의 출발점은 한 대학생이 던진 “의정부에서 예술가로 먹고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지역에서 생활하는 예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무대를 찾아 서울로 향해야 하는 현실을 바꾸려는 시도가 연극제로 이어졌다.
참여 단체에는 별도의 정산이 필요 없는 제작지원금이 지급됐고, 공연장 대관료와 장비 대여도 무료로 제공됐다. 티켓 수익은 전액 창작단체에 귀속되는 구조로 운영됐다. 창작단체가 작품 제작과 공연에 집중하고 다음 활동을 준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휴서사 유희리 대표는 연극제를 두고 “창작자에게는 다음 작업을 이어갈 기반을, 시민에게는 가까운 동네 극장에서 새로운 연극을 발견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준비한 연극제”라고 소개했다.
이번 행사는 경기문화재단의 ‘2026 경기예술지원 창작공간 기획프로그램’ 사업 지원을 받아 열렸다. 지역 창작공간과 청년 예술단체가 함께 작품 발표의 기회를 넓히고, 시민이 생활권 가까이에서 연극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골목 지하에서 만나는 작은 극장
예술공간 휴서사는 의정부 둔야로의 평범한 골목 상가 지하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간판이 걸린 입구를 따라 내려가면 공연장이 나타난다.
입구에는 제2회 휴서사 창작연극제를 알리는 파란색 포스터와 해당 주간에 공연되는 작품들의 포스터가 나란히 게시됐다. 화려하고 큰 간판 대신 작품과 관객이 가까이 마주하는 소규모 공연장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가까운 공간에서는 배우들의 대사와 움직임이 선명하게 전달됐다. 사형 집행을 앞둔 작은 방이라는 극 중 설정도 공연장의 규모와 맞물리며 긴장된 분위기를 형성했다.
사형 집행 한 시간 전의 대화
‘호명’은 사형 집행을 불과 한 시간 앞둔 방을 배경으로 한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형수, 신부, 집행인의 대화가 이어지고, 세 인물 사이에 감춰져 있던 모습이 극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드러난다.
작품에서 세 사람은 처음부터 고유한 개인이라기보다 ‘사형수’, ‘신부’, ‘집행인’이라는 역할과 호칭으로 제시된다. 극은 이 이름표 뒤에 가려진 각 인물의 모습을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규정할 수 있는가. 작품은 인물들이 자신에게 붙은 이름과 역할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이 질문을 무대의 중심에 놓는다.
이름을 지운 뒤 드러나는 사람
공연의 제목인 ‘호명’은 누군가의 이름이나 호칭을 불러 그 존재를 특정하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 극이 진행될수록 세 인물은 정해진 이름표에만 머물지 않고, 그 뒤에 가려졌던 각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형수는 왜 ‘사형수’라는 이름으로만 불리기를 거부하는지, 신부와 집행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마주하는지가 대화 속에서 펼쳐진다. 특정한 호칭 하나로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판단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도 함께 이어진다.
인물들이 ‘사형수’, ‘신부’, ‘집행인’이라는 틀을 벗어나는 순간, 무대에는 역할보다 사람 자체가 부각된다. 이름과 호칭을 지우는 과정이 오히려 각 인물의 존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성이다.
지역 예술가와 시민을 잇는 무대
제2회 휴서사 창작연극제는 경기 북부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인들이 한 공간에서 약 3주 동안 여섯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로 꾸려졌다. 창작단체에는 제작과 발표의 기반을 제공하고, 시민에게는 가까운 동네 극장에서 새로운 연극을 접할 기회를 마련했다.
제작지원금과 무료 대관, 장비 지원, 티켓 수익의 창작단체 귀속이라는 운영 방식은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직접 뒷받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경기문화재단 지원으로 마련된 이번 연극제는 의정부의 지역 공간과 경기 북부 청년 예술단체가 만나는 무대로 진행됐다.
그 가운데 ‘호명’은 작은 방과 세 인물, 한 시간이라는 압축된 조건을 통해 이름과 역할이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질문했다. 의정부 골목의 소극장에서 펼쳐진 대화 중심의 무대는 지역 창작연극제가 품은 작품의 다양성을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