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산 바위와 천년암자

설봉산에서 만나는 이천 9경
경기도 이천의 진산으로 불리는 설봉산에는 이천 9경 가운데 제3경인 삼형제바위와 천년고찰 영월암이 자리한다. 설봉산 생태숲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전설을 품은 화강암 바위와 오랜 불교 유산을 한 코스에서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설봉서원을 지나면 영월암으로 향하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직진하는 길은 영월암으로 바로 이어지고, 왼쪽 산길은 삼형제바위를 거쳐 영월암으로 향한다. 두 길 모두 거리는 약 500m다. 삼형제바위를 먼저 살펴보려면 왼쪽 길로 들어서면 된다.
산길에는 별도의 리본이 많지 않지만 잘 정돈된 나무 계단이 이어져 이동 방향을 보여준다. 2026년 10월 중순의 설봉산에는 아직 푸른 기운이 남아 있었고, 숲 사이로 크고 작은 바위들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천 9경으로 꼽힌 바위 명소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이천 시가지를 감싸는 화강암 산
설봉산은 높이 394m의 비교적 아담한 화강암 산이다. 이천 시가지를 서쪽에서 감싸고 있으며, 과거에는 북악산으로 불렸다. 학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닮았다고 해 무학산 또는 부학산이라는 이름으로도 전해진다.
산행 구간에서는 나말여초 시기의 석탑 일부로 추정되는 석부재도 볼 수 있다. 나말여초는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이어지는 시기를 가리킨다. 설봉산과 영월암 일대에 오랜 역사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두 전설이 깃든 삼형제바위
삼형제바위에는 어머니와 세 아들을 둘러싼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호랑이에게 위협받는 어머니를 구하려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삼형제가 돌이 됐다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병졸로 차출된 세 아들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홀어머니의 무덤 곁에서 통곡하던 삼형제가 그대로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다.
전설 속 사연과 별개로, 지질학적으로 삼형제바위는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대보 화강암이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노출되며 풍화 작용을 거쳤고, 그 결과 오늘날의 독특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왼쪽과 중앙, 오른쪽에 자리한 세 바위는 지나치게 멀리 떨어지지도, 완전히 붙지도 않은 채 나란히 서 있다. 세 형제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선 듯한 모습이 전설과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바위 너머로는 설봉호수와 설봉공원, 중리동 일대가 펼쳐진다. 바위가 이천 시내를 내려다보는 듯한 풍경과 탁 트인 조망이 어우러진다. 삼형제바위에서 설봉산 정상까지는 입구에서 바위까지 올라온 거리와 비슷한 구간이 남아 있으며, 영월암은 약 100m 거리에 있다.
설봉산 중턱의 천년고찰 영월암
삼형제바위에서 영월암 쪽으로 이동하면 일주문이 아니라 범종각 뒤편을 통해 사찰에 들어서게 된다. 영월암은 대형 사찰보다는 설봉산 중턱에 조용히 자리한 암자에 가까운 규모다. 2층 누각형 종루 대신 아담한 종각에 범종이 걸려 있어 소박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이룬다.
설봉산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당시 사찰 이름은 북악사였고 설봉산도 북악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다만 의상대사의 창건 사실을 입증하는 명확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경내에 남아 있는 유물과 유적의 양식을 보면 영월암은 적어도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는 존재했던 사찰로 파악된다. 전승과 유물이 함께 남아 설봉산 불교문화의 긴 시간을 전하고 있다.
대웅전과 경내 전각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인 영월암의 주불전은 대웅전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삼존불과 탱화가 봉안돼 있다. 대웅전은 2016년 해체·보수됐으며, 일제강점기에 해체된 이천 관아의 목재 부재 일부를 활용해 지은 건물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경내에는 종무소와 요사채 역할을 하는 안심당과 감로각이 있다.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아미타전도 자리한다. 전각 주변으로는 구절초가 피어 있으며, 흰 꽃 사이에서 붉은 구절초도 드물게 눈에 띈다.
설봉산의 높이는 394m로 높지 않지만 영월암은 산속 깊숙한 곳에 자리해 해가 비교적 일찍 기운다. 2026년 10월 중순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도 경내 일부에 그늘이 드리워져 산사의 차분한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고려 양식의 삼층석탑
대웅전과 아미타전 사이의 계단을 오르면 고려시대 양식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이 석탑은 한때 무너져 있었으나 복원돼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산행 중 확인할 수 있는 석부재와 경내의 삼층석탑은 이 일대에 남은 오랜 불교문화의 흔적을 보여준다. 크지 않은 사찰 안에 여러 시대의 유물과 전승이 함께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영월암의 특징이다.
암벽에 새긴 마애여래입상
영월암에서 가장 주목되는 문화유산은 보물로 지정된 마애여래입상이다. 약 9.6m 높이의 거대한 자연 암벽 전체를 활용해 조성한 상으로, 고려 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지정 당시에는 마애여래입상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민머리와 옷의 형식을 근거로 나한상이나 조사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전해진다. 명칭과 도상에 관한 해석이 함께 남아 있는 문화유산인 만큼 실제 형식을 세심하게 살펴볼 만하다.
산신과 칠성, 독성을 모신 삼성각 뒤편 바위에는 나반존자가 모셔져 있다. 불교에서 화불은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 분신불 또는 응신불을 뜻한다.
적광전의 석조 유물
비로자나불을 모신 적광전에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석조광배와 연화좌대가 남아 있다. 이 유물들은 당시 영월암의 규모와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다.
적광전 주변은 꽃밭으로 조성돼 있다. 전각과 석조 유물을 둘러본 뒤 잠시 머물며 산사의 정취를 살피기 좋은 공간이다. 소규모 사찰의 차분한 경관과 계절 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600년 은행나무의 전설
영월암에는 수령 600년이 넘은 웅장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 고려 말 고승 나옹선사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꽂아 둔 지팡이가 자라 은행나무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늦가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오래된 전각과 산사의 풍경이 더욱 선명해진다. 경내에 그늘이 내려앉은 시간에도 은행나무가 자리한 통로에는 햇살이 비쳐 밝은 색감이 두드러진다. 이곳에서는 이천 시내와 설봉호를 향한 전망도 함께 볼 수 있다.
영월암은 규모가 작은 사찰이어서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화려한 진입 시설보다는 산길과 전각, 암벽에 새긴 불상, 오래된 은행나무가 이어지는 소박한 구성이 중심을 이룬다.
삼형제바위와 영월암 탐방 동선
설봉산 생태숲길을 이용할 경우 설봉서원에서 출발해 삼형제바위를 먼저 거친 뒤 영월암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설봉공원 3주차장에 차량을 두고 생태숲길을 따라 오르는 동선도 가능하다.
- 설봉공원 또는 설봉서원 방향에서 생태숲길로 진입한다.
- 영월암 갈림길에서 왼쪽 산길을 선택한다.
- 나무 계단을 따라 삼형제바위로 오른다.
- 바위 전망과 세 바위의 형태를 살핀다.
- 약 100m 떨어진 영월암으로 이동한다.
- 대웅전과 삼층석탑, 마애여래입상, 적광전, 은행나무를 차례로 둘러본다.
차량으로 영월암에 접근하는 길은 경사가 심해지는 구간이 있다. 영월암 택배함 부근은 경사가 가팔라지기 전에 차량을 세울 수 있는 지점으로 안내된다. 현장 여건을 확인하고 보행자와 사찰 이용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동할 필요가 있다.
장소 정보
| 장소 | 위치 |
|---|---|
| 영월암 |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2709번길 388 |
| 설봉산 삼형제바위 |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
설봉산 삼형제바위와 영월암을 잇는 길은 자연경관과 전설, 지질학적 특징, 불교문화유산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탐방 코스다. 세 바위에 얽힌 가족의 전설에서 출발해 천년고찰의 석탑과 마애상, 600년 넘은 은행나무로 이어지는 흐름이 이 길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