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요새 죽주산성

경기도 천년 역사를 품은 산성
2026년 10월 18일 경기도민의 날을 맞아 주목할 만한 역사 현장 가운데 하나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의 죽주산성이다.
경기도민의 날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부터 ‘경기’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2018년 제정됐다. 죽주산성은 경기 동남부의 길목을 지키며 외적의 침입에 맞선 방어 거점으로, 경기도의 오랜 역사와 선조들의 강인한 정신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산성 입구에는 전체 구조와 주요 시설을 확인할 수 있는 안내도와 해설판이 설치돼 있다. 탐방객들은 이곳에서 이동 경로를 살핀 뒤 성벽과 둘레길을 따라 산성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산길을 오르면 오래된 석축과 주변 산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높은 성벽에서는 안성과 죽산 일대의 지형이 넓게 펼쳐진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
죽주산성은 중부 지역을 남북으로 지나는 길과 동서 방향으로 서해까지 연결되는 길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다. 교통의 중심이면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였던 셈이다.
이 산성은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던 시기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는 동안 성벽을 다시 쌓고 방어 시설을 보강하면서 오랜 기간 활용됐다. 현재는 경기도기념물 제69호로 지정돼 있다.
죽주산성은 후삼국시대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9년 동안 머물며 기반을 다졌으며, 궁예가 산성을 찾아와 견훤과 처음 만난 장소로도 전해진다. 여러 시대의 역사적 장면이 한 공간에 겹쳐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내성과 중성 외성이 만든 3중 방어선
죽주산성의 핵심적인 특징은 산의 지형을 활용한 내성·중성·외성의 3중성 구조다. 지리적 중요성이 큰 곳이었던 만큼 시대마다 성벽이 확대되고 보수되면서 방어선이 겹겹이 형성됐다.
| 구분 | 구조와 특징 |
|---|---|
| 중성 | 신라 시대에 가장 먼저 축조된 본성의 성벽이다. 높이는 6~10m에 이르며, 성벽 바깥에 도랑인 해자를 파서 방어력을 높였다. |
| 외성 | 고려 초기에 신라 산성의 북벽 바깥으로 새로운 성벽을 덧대어 쌓으면서 산성의 규모를 확장한 구역이다. |
| 내성 | 임진왜란 이후 방어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중성 내부의 높은 지점에 쌓은 성벽이다. 이 공사를 통해 견고한 3중 방어 구조가 완성됐다. |
성 안에는 조선 시대에 설치된 4개의 문을 비롯해 화약 무기의 발달에 따라 마련된 포루도 남아 있다.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되도록 만든 방어 시설인 치성에는 왜성의 축조 기법이 적용됐다. 서로 다른 시대의 시설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어 성곽 기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산성 내부 계곡에서는 신라 시대의 집수 시설도 발굴됐다. 물을 저장하던 이 시설은 확인된 원형을 바탕으로 복원됐다. 오랜 기간에 걸친 다양한 축조 방식과 방어 시설, 생활 기반 시설이 함께 남아 있다는 점에서 죽주산성은 전통 토목 기술을 현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역사 공간이다.
성벽에서 확인하는 전략적 입지
성벽 위에서는 안성과 죽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을 폭넓게 살필 수 있는 시야와 산세를 이용한 성곽의 배치를 함께 보면 죽주산성이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성벽과 이어진 둘레길에는 가파른 구간이 있으며, 높은 지점에는 추락 주의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관람객들은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면서도 성벽 가장자리와 경사진 길에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오르막과 석축 주변에서는 발밑을 살피며 이동할 필요가 있다.
북문지 정상부와 북포루 터에서는 성곽의 방어 구조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포루 안내판 주변에는 포루 터의 석축이 남아 있다. 포루는 성곽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 시설로, 당시 산성이 수행했던 역할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몽골군을 막아낸 죽주 전투
죽주산성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고려 고종 23년인 1236년에 벌어진 죽주 전투다. 당시 죽주방호별감이었던 송문주 장군은 과거 귀주성 전투에서 몽골군과 싸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공격에 대비하고 성을 방어했다.
몽골군은 돌과 불을 쏘며 거세게 공격했지만 고려군은 산성을 지켜냈다. 전투는 15일 동안 이어졌으며, 몽골군은 끝내 죽주산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송문주 장군은 전투 이후 백성들로부터 ‘신명’이라 불릴 정도로 신뢰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충의사에서는 매년 제향이 거행된다.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에는 죽주산성을 지킨 송문주 장군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이 동상은 송문주 장군의 지혜와 용맹, 각종 전투를 통해 안성의 명예를 높인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 2017년 8월 약 3억 원을 들여 건립됐다. 산성과 사당, 동상은 죽주 전투와 송문주 장군의 활동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역사 흔적이다.
임진왜란 때 다시 이어진 항전
죽주산성의 군사적 역할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임진왜란 중인 선조 26년, 1593년에는 충청병마절도사 황진 장군이 죽주산성에 주둔하던 왜군을 물리치고 성을 탈환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시대에는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냈고,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속에서 왜군을 몰아낸 현장이 된 것이다. 죽주산성은 외적의 공격에 맞서 지역과 백성을 지킨 역사를 성벽과 군사 시설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경기도민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문화유산
죽주산성에 남은 성벽은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니다. 삼국시대의 지정학적 중심지에서 출발해 고려의 대몽 항쟁과 조선의 임진왜란을 거치며 이 땅을 지켜낸 역사가 축적된 기록이다.
1018년부터 이어진 경기라는 이름의 천년 역사 속에서 죽주산성은 도민의 당당한 기상과 자부심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산성 곳곳에 남은 석축과 방어 시설은 국난을 극복한 선조들의 지혜와 호국 정신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경기도민의 날은 지역 곳곳에 남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 죽주산성은 경기 동남부의 역사적 역할과 시대별 성곽 기술, 외침에 맞선 항전의 기록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경기옛길과 함께 걷는 역사 탐방
죽주산성은 경기옛길 영남길 제8길인 죽주산성길에 포함돼 있다. 산성의 성벽과 주변 길을 걸으며 역사 탐방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탐방 전 경기옛길 공식 누리집이나 앱에서 코스를 확인할 수 있으며, 문화유산 방문 인증도 이용할 수 있다.
산성 둘레길은 역사 시설과 자연 지형이 함께 이어진다. 오르막을 따라 이동하는 관람객들 사이로 성벽과 숲이 펼쳐지고, 정상부에서는 넓은 주변 풍경이 드러난다. 다만 경사가 있는 구간과 높은 성벽이 있으므로 편안한 복장과 안전한 보행이 중요하다.
죽주산성 방문 정보
- 위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양대로 111-71, 매산리 산106
- 입장료와 주차비 무료
- 예상 소요시간 약 40분에서 1시간
- 편의시설 산성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다. 탐방에 앞서 입구 주차장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 안전 사항 가파른 길과 높은 성벽이 있어 추락 주의 안내를 확인하며 이동해야 한다.
안성시 문화관광해설 안내
죽주산성은 사전 예약이 있을 때 문화관광해설사가 배치되는 비상시 해설지역이다. 해설은 최소 10명 이상부터 신청할 수 있으며, 서비스 이용일 3일 전까지 예약해야 한다.
혹서기인 7월과 8월, 혹한기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해설을 운영하지 않는다. 예약이 완료되면 문화관광해설사가 죽주산성의 역사와 주요 시설을 설명하고 탐방을 안내한다.
문화관광해설 문의는 안성시 관광지원센터 031-677-1330으로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