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뿌리 최항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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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뿌리 최항 묘역

훈민정음 반포 580돌을 맞는 2026년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 창제에 힘을 보탠 집현전 학자 문정공 최항 선생의 묘역이 주목받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에 자리한 이 묘역은 최항 선생의 생애와 공적을 전하는 묘비, 신도비, 문인석 등 여러 석물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역사 공간이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한 문자로 훈민정음을 반포한 때는 1446년이다. 오늘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한글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오랜 시간 글자를 연구하고 다듬었다. 최항 선생은 그 과정에 참여한 집현전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돼 있다.

집현전에서 쌓은 18년의 공적

묘소 입구에는 최항 선생의 생애와 공적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안내 내용에 따르면 최항 선생은 세종 16년인 1434년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다. 집현전 8학사로 활동하며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언해 작업을 마칠 때까지 18년 동안 집현전에서 근무한 이력도 함께 기록돼 있다.

최항 선생의 18년 집현전 근무 기록은 한글 창제와 보급이 짧은 시간에 완성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묘역 안내판은 이러한 학문적 활동을 비롯해 세조와 성종 대에 익대공신과 좌리공신으로 책록된 사실을 국문과 영문으로 설명한다.

최항 선생은 1409년에 태어나 1474년에 세상을 떠났다. 묘역에 남은 기록은 그가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학자이면서 조선 전기의 재상으로 활동했음을 함께 전한다.

제례를 준비하는 재실과 태허정

묘역으로 들어서면 제기를 보관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한옥 고택을 볼 수 있다. 원문 취재가 이뤄진 2026년 10월 3일에는 앞마당에 푸른 천막과 흰 천막이 설치돼 있었고, 긴 제사상과 의자도 놓여 있었다. 후손들은 매년 10월 3일 개천절과 10월 9일 한글날에 제사를 지내며, 한글날에는 전국 각지의 문중 후손들이 모여 제례를 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묘소를 지키는 문중 후손이 거주하던 한옥 고택의 이름은 태허정이다. 최항 선생의 호인 태허를 당호로 사용한 건물이다. 나무 문살 옆 벽면에는 최항 선생의 좌우명으로 전해지는 글을 담은 목판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의 뜻은 세 번 거듭 생각한 뒤 한마디 말을 하고, 세 번 거듭 생각한 뒤 행동하라는 내용이다. 말과 행동을 내놓기 전에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최항 선생이 언행의 신중함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전한다.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태허정 인근에는 최항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한다. 정갈하게 쌓은 돌담과 전통 기와를 얹은 일각문 너머로 단청을 입힌 사당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사당 현판에는 문정공최선생지묘라는 글이 적혀 있다.

사당은 평소 관리 문제로 문을 잠가 두지만, 원문 취재 당시에는 10월 3일 제사를 앞두고 문이 열려 있었다. 내부에는 붉은 관복을 입은 최항 선생의 영정이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모셔져 있다. 영정 옆에는 붉은 천으로 감싼 위패의 감실이 있고, 중앙에는 제례용 탁자와 향로가 놓여 있다.

후손의 설명에 따르면 사당에는 본래 상아로 만든 신주가 있었으나 도난으로 사라져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는 묘역과 사당에 전해 내려오던 유물이 훼손되거나 유실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보존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계단 끝에서 만나는 묘역

후손이 거주하는 집 안쪽에는 묘소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련돼 있다. 후손은 이 계단을 광주시 문화재단이 조성했다고 설명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묘비와 신도비, 문인석, 장명등을 비롯한 옛 석물들이 묘소 주변을 둘러싼 모습이 나타난다.

완만한 능선 위에 조성된 묘소는 푸른 숲과 하늘을 배경으로 단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봉분 앞 중앙에는 제례를 올리는 상석과 묘역을 밝히고 지키는 의미를 지닌 장명등이 놓여 있다. 봉분 좌우에는 최항 선생의 행적과 지위를 기록한 묘비와 비석이 배치돼 있다.

묘역 앞 양쪽에는 관복을 입고 두 손으로 홀을 쥔 문인석 한 쌍이 서 있다. 오랜 세월 풍우를 견딘 석물들은 최항 선생의 묘소를 지키는 형태로 배치돼 있으며, 조선 전기 묘제의 엄숙한 분위기를 더한다.

옛 묘표와 재건 묘표

봉분 오른쪽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은 옛 묘비인 원형 묘표가 서 있다. 비면에는 영성부원군을 비롯해 최항 선생과 정경부인의 관직을 나타내는 글귀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봉분 왼쪽에는 새로 세운 재건 묘표가 자리한다. 비문에는 최항 선생이 영의정과 영성부원군에 올랐고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은 사실을 비롯해 조선 전기 관직과 공훈이 한문으로 적혀 있다.

비석에는 최항 선생의 여러 직함이 길게 이어진다. 이는 최항 선생이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에 이르는 여섯 임금의 시대를 거치며 활동했음을 전하는 기록이다. 옛 묘표와 재건 묘표를 나란히 둔 구성은 마모된 원형 기록을 보존하면서도 후대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방식이다.

두 기의 신도비가 전하는 기록

묘역 왼쪽에는 두 기의 큰 비석과 작은 해설 석판이 놓여 있다. 최항 선생의 일생과 공적을 기리는 신도비다. 오른쪽 비석은 원래 세워졌던 옛 신도비이며, 왼쪽 비석은 세월이 흐르며 마모된 원래 비문의 내용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새로 건립됐다.

함께 설치된 문정공 최항 선생 신도비 건립기에는 신도비의 유래와 비문의 가치, 비석을 복원해 다시 세운 과정이 기록돼 있다. 두 비석은 원형을 그대로 남기는 일과 읽을 수 있는 기록을 후대에 전하는 일이 함께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묘역의 비석들은 최항 선생의 지위만을 알리는 표지가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학자이자 조선 전기 재상의 행적을 이어 주는 역사 자료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묘역 관리

안내판 오른쪽에는 전국 삭녕최씨 종친회의 성묘단 기념식수를 알리는 표석이 자리한다. 표석에는 재전삭녕최씨종친회 성묘단 기념식수라는 글귀와 함께 1975년 10월을 뜻하는 연원이 음각돼 있다.

이 표석은 전국의 종친들이 50여 년 전부터 묘역을 찾아 성묘하고 주변을 가꿔 왔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표석이지만, 묘역 보존이 한 세대에 그친 것이 아니라 후손들의 지속적인 관리 속에서 이어졌다는 사실을 전한다.

재실과 사당, 묘소, 신도비와 기념 표석은 각각 다른 역할을 지닌다. 재실은 제례 준비를 위한 공간이고, 사당은 영정과 위패를 모신 곳이다. 묘소와 석물은 최항 선생의 생애와 지위를 기록하며, 기념 표석은 후손들이 묘역을 관리해 온 시간을 증명한다.

도마리 마을을 바라보는 묘소

묘소에서는 퇴촌면 도마리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산자락이 이어지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들판과 마을의 집들이 어우러진다. 능선 위 묘역의 고요한 분위기와 들판의 가을 풍경이 함께 펼쳐지는 장소다.

후손의 설명에 따르면 최항 선생 부인의 묘소는 계곡과 마을 건너편 산자락에 자리한다. 두 묘소는 한곳에 합장되지 않았지만 서로 마주 보는 방향으로 조성돼 있다고 한다. 산과 계곡, 마을을 사이에 둔 채 두 묘소가 맞은편 능선에 각각 자리한 배치다.

한글날에 되새기는 최항의 삶

최항 선생 묘역은 한글 창제에 참여한 집현전 학자의 발자취와 조선 전기 재상의 생애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입구 안내판에서 시작해 태허정과 사당, 묘소, 신도비를 차례로 둘러보면 훈민정음 창제 참여부터 관직 생활, 후손들의 묘역 관리에 이르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을 맞는 해다. 백성이 쉽게 익혀 자신의 뜻을 나타낼 수 있는 글자를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뜻과 그 곁에서 연구에 참여한 집현전 학자들의 노력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묘역이 지닌 의미는 분명하다.

최항 선생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 산11-1에 있다. 현장에는 국문과 영문 안내판이 설치돼 있어 최항 선생의 생애와 집현전 근무, 훈민정음 창제 참여, 공신 책록 등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사당은 관리 상황에 따라 문이 잠겨 있을 수 있다.

한글날을 맞아 이곳을 찾는 일은 오늘날 매일 사용하는 우리 글자가 오랜 연구와 헌신을 거쳐 탄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역사 탐방이 될 수 있다. 묘역에 남은 석물과 기록, 후손들이 이어 온 관리의 흔적은 한글 창제의 한 축을 담당한 학자의 삶을 오늘까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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