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연암을 걷는 책방

도심 속에서 만나는 인문학 산책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밀집한 남양주시 다산1동 도심에는 책과 사람, 지역 문화를 잇는 동네 책방 ‘같이산책’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책을 판매하는 서점인 동시에 방문객이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공유 서재이자 주민 문화 공간으로 운영된다.
책방 입구에는 무료입장, 도서 판매, 읽을 책, 공유 서재, 외부 음료 반입, 성인·청소년 책 모임, 작가와의 만남 등 공간의 성격과 운영 내용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방문객이 책방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한 안내다.
같이산책에서는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을 함께 살펴보는 고전 인문학 프로그램 ‘다산과 연암’이 진행되고 있다. 남양주라는 지역적 배경과 조선 후기 두 지식인의 삶을 책으로 연결하고, 주민들이 독서와 대화를 통해 고전을 일상 가까이에서 접하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햇살과 책장이 만드는 차분한 풍경
책방 내부에서는 정약용과 박지원 관련 도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우드 톤의 실내 장식, 은은한 조명이 책으로 채워진 서가와 어우러진다. 중앙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이 놓여 있어 방문객이 머물며 책을 읽거나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서가에는 인문·경제 분야 도서부터 그림책까지 다양한 책이 배치돼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에고라는 적을 비롯한 책 표지에는 책방지기가 손으로 작성한 추천 메모가 붙어 있다. 이 메모는 방문객이 책의 특징을 살펴보고 읽을 책을 고르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짧은 안내 역할을 한다.
특정 주제에 따라 책을 모아 놓은 기획 코너도 운영된다. 다산과 연암을 다룬 서가는 인문학 프로그램과 연결돼 두 인물의 삶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책을 단순히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주제를 여러 권의 책으로 이어 읽게 하는 공간의 성격이 드러난다.
책장 사이와 진열대에는 세계문학 자수 책갈피, 같이산책의 로고가 새겨진 머그컵과 에코백, 엽서와 노트 등도 놓여 있다. 여행 사진과 필름 카메라, 자전거로 꾸민 전시 공간도 마련돼 책방의 이름과 산책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같이산책에서는 문화누리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도서를 살펴보는 방문객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주민들이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동네 서점과 문화 사랑방의 모습이 함께 나타난다.
정약용과 박지원을 함께 읽는 이유
‘다산과 연암’은 딱딱한 형식의 고전 강의보다 주민들이 둥글게 모여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생활 밀착형 프로그램에 가깝다. 참여자들은 정약용의 애민 정신과 박지원의 실용적인 시각을 오가며 두 인물의 삶과 사상을 살펴본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고전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책을 읽은 이웃들의 서로 다른 생각을 듣는 데 있다. 정약용의 고향인 남양주에서 지역 주민들이 그의 발자취와 사상을 공부한다는 점도 이 모임의 특징이다.
참여자들은 책에 담긴 문장과 역사적 인물의 삶을 현재 자신의 태도와 연결해 이야기한다. 독서 뒤에는 각자 기억에 남은 내용과 느낀 점을 나누며, 동일한 책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해석과 생각이 나올 수 있음을 확인한다. 이런 과정은 독서와 토론을 어렵거나 특별한 활동으로 한정하지 않고 일상에서 이어지는 대화로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 동네 여유당 프로젝트’는 같이산책뿐 아니라 남양주 곳곳의 서점에서 서로 다른 세부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지역 서점의 특성과 주제를 살린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이 집 가까운 곳에서 책을 읽고 인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배경
같이산책 황인성 대표는 ‘다산과 연암’을 기획한 배경으로 상반기 모임에서 진행한 실학박물관 방문을 들었다. 당시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의 삶을 비교하며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관련 저서가 있어 이웃들과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을 함께 나누고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황 대표가 말한 기획 방향은 두 인물을 따로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참여자들이 정약용과 박지원의 삶을 함께 읽고 비교하면서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마주했던 현실과 고민을 살펴보도록 한 것이다. 관련 도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어서 독서와 대화가 프로그램의 중심을 이룬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책방을 단순히 지식을 얻는 곳이 아니라 편안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여길 때라고 밝혔다. 주민들이 독서와 토론을 고상하거나 어려운 일로 생각하지 않고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도 기쁨을 느낀다고 전했다.
같이산책은 현재 여러 연령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황 대표는 앞으로도 주민들이 집 가까운 곳에서 평생학습을 누리고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소통할 수 있는 동네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발견한 고전의 의미
남양주시민 조세야·강경호 부부는 상반기에 참여했던 가치산책 프로그램의 경험이 좋아 이번 ‘다산과 연암’에도 함께 참여했다고 밝혔다. 앞선 독서 프로그램에서 얻은 긍정적인 경험이 새로운 고전 인문학 모임으로 이어진 셈이다.
프로그램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내용으로는 “적은 늘 가까이 있다”라는 구절을 꼽았다. 정약용을 질투하는 세력에 관한 내용을 읽으며 자신도 자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전 속 인물과 사건을 읽는 과정이 참여자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동네 책방에서 지역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진행하는 모임의 장점도 언급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모이니 공감대가 비교적 빠르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처음 참여하는 모임이라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웃 주민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남양주에서 정약용을 공부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책으로 그의 삶을 읽고 실제로 살았던 곳을 방문하며 생각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남양주에 살면서도 그동안 정약용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는 설명이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서 서로 다른 생각이 나온다는 점도 인상적인 경험으로 꼽았다. 책을 읽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동네 책방이 잇는 책과 사람
같이산책의 ‘다산과 연암’은 지역의 역사적 인물, 동네 서점, 주민 독서 모임을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다. 정약용과 박지원의 삶을 읽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고전의 문장을 살펴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다른 주민의 관점을 듣는다.
책방 안의 넓은 테이블은 독서와 대화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중심 공간이다. 주변의 서가에는 프로그램 주제와 연결되는 책이 놓여 있고, 손 글씨 추천 메모와 기획 코너는 방문객이 관심 분야를 따라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과 나무색 중심의 실내, 은은한 조명은 주민들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지역 서점은 책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주민이 가까운 곳에서 배우고 소통하는 생활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같이산책에서 진행되는 독서 모임과 작가와의 만남, 고전 인문학 프로그램은 이러한 역할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동네 여유당 프로젝트’와 ‘다산과 연암’은 남양주의 지역성과 독서 활동을 연결한다. 주민들은 멀리 이동하지 않고도 동네 책방에서 고전을 읽고, 이웃과 생각을 나누며, 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책장과 테이블을 사이에 둔 대화는 바쁜 도심 생활 속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자신의 내면과 주변 사람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