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위에 펼친 가을책방

도심 광장이 야외 도서관으로
가을 햇살이 내려앉은 이천시청 모두의 광장이 책과 휴식, 공연과 체험을 함께 즐기는 야외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경기도서관이 주최하고 이천시가 주관한 ‘2026 쌀롱 드 도서관’이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이곳에서 열렸다.
행사장에는 야외 독서존을 중심으로 독서골든벨과 마술쇼, 북큐레이션, 교환독서, 창작 체험 등 여러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책을 읽기 위해 광장을 찾은 시민과 산책 중 발걸음을 멈춘 주민들이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정숙한 실내에서 책을 읽는 일반적인 도서관과 달리, 잔디와 나무 사이를 거닐며 자유롭게 독서 문화를 누리는 열린 축제의 모습이었다.
입구에는 종합 안내판이 눈에 잘 띄도록 설치돼 방문객들이 행사 구성과 관람 동선을 파악하기 편리했다.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관심 있는 부스를 먼저 둘러보고, 야외 독서존에서 쉬었다가 다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이 구성됐다.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 시작된 피크닉
행사장 입구 쪽에는 시민 누구나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는 야외 서가가 자리했다. 나무 책장에는 책 표지가 앞을 향하도록 진열돼 제목과 그림을 살펴보기 쉬웠다. 도서관의 빼곡한 서가에서 책등을 확인하는 방식과 달리, 한 권 한 권의 표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지나가던 시민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붙잡았다.
방문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관심이 가는 책을 꺼내 천천히 펼쳐봤다. 처음부터 읽을 책을 정해 온 사람뿐 아니라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책을 선택한 시민도 편안하게 독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일상적으로 오가는 시청 광장에 책장이 놓이자 독서는 별도의 준비가 필요한 활동이 아니라 잠시 머물며 누릴 수 있는 일상이 됐다.
푸른 잔디 위에는 작은 텐트와 쉼터가 배치됐다. 시민들은 서가에서 고른 책을 들고 원하는 자리에 앉았고, 아이와 보호자가 나란히 책장을 넘기는 모습도 이어졌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머물거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조용히 독서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 도심 속 가벼운 가을 소풍을 연상하게 했다.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는 의자에 기대 책에 집중한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가을 기운이 번지는 광장과 천천히 넘어가는 책장이 한데 어우러졌으며, 방문객들은 정해진 관람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발길이 닿는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야외 독서존은 책을 읽는 공간인 동시에 시민들이 잠시 속도를 늦추는 쉼터 역할을 했다.
읽고 만들며 가까워진 책
체험 부스에서는 현장 미션을 마친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나만의 북배지 만들기’가 진행됐다.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색연필과 만들기 재료가 놓였고, 어린이들은 각자의 도안을 고민하며 작업에 집중했다. 완성할 모양과 색을 직접 선택하는 과정에서 책은 읽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손으로 표현하는 창작 소재가 됐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체험을 이어갔다. 어린이들이 진지하게 도안을 그리고 보호자들이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행사장에는 차분한 집중과 활기가 함께 감돌았다. 눈으로 문장을 읽는 독서와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이 연결되면서 어린 방문객들도 자연스럽게 행사에 몰입했다.
부스를 둘러본 뒤 야외 독서존으로 이동해 쉬고, 다시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흐름도 자연스러웠다. ‘쌀롱 드 도서관’은 책을 중심에 두면서도 독서와 창작, 놀이와 휴식이 서로 끊기지 않도록 구성된 복합 문화 행사였다.
새 독자를 만난 제적도서
행사장 한편에는 제적도서 무료 나눔 부스가 마련됐다. 서가에서 역할을 마친 책들이 정갈하게 진열돼 새로운 독자를 기다렸다. 나무와 잔디 사이에 놓인 책들은 작은 야외 책방처럼 편안한 풍경을 만들었고, 시민들은 평소 관심을 두던 분야뿐 아니라 현장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까지 폭넓게 살펴봤다.
무료 나눔은 더 이상 도서관에서 활용하지 않는 책이 시민의 손에서 다시 읽힐 기회를 제공했다. 방문객들은 책의 제목과 표지를 비교하고 내용을 확인하며 각자에게 맞는 한 권을 골랐다. 책을 폐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독자에게 연결했다는 점에서 자원을 나누고 독서 기회를 넓히는 의미도 드러났다.
SNS 팔로우 이벤트로 운영된 ‘블라인드북’ 코너도 관심을 모았다. 이 코너에서는 표지와 제목을 가린 채 제시된 키워드만 보고 책을 선택하도록 했다. 작가나 표지 디자인, 익숙한 제목을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핵심 단어를 따라 새로운 책을 만나는 구성이었다.
어떤 책이 들어 있는지 바로 알 수 없다는 점은 선택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만들었다. 시민들은 키워드를 비교하며 책을 골랐고, 부스 앞에서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책을 매개로 낯선 작품을 발견하고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지역 문화행사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무대에서 이어진 독서의 즐거움
메인 무대 앞에는 등번호표를 단 어린이들이 모여 모니터 화면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책과 관련된 문제를 풀며 실력을 겨루는 독서골든벨 참가자들이었다. 어린이들은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답을 적었고, 보호자들은 객석에서 과정을 지켜봤다.
독서골든벨은 책에서 얻은 지식을 확인하는 자리이면서 어린이들이 많은 사람 앞에서 문제에 도전하는 경험을 쌓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답을 고민하는 참가자들의 집중된 표정과 객석에서 이어지는 웃음이 어우러지며 행사장에 생동감을 더했다.
무대와 행사장 곳곳에서는 마술쇼를 비롯해 주제별로 책을 소개하는 북큐레이션, 서로 책을 바꾸어 읽는 교환독서, 감성적인 문구를 나누는 ‘문장 한 톨’ 등이 진행됐다. 한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책을 살펴본 뒤 창작 활동까지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고르게 배치됐다.
각 프로그램은 책을 읽는 한 가지 방식만 제시하지 않았다. 퀴즈로 내용을 되짚고, 다른 사람과 책을 교환하며, 마음에 남는 문장을 나누는 방식으로 독서 경험을 확장했다. 마술쇼와 체험 활동도 더해져 어린이와 보호자, 일반 시민이 각자의 관심에 따라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시민의 일상으로 나온 도서관
이번 행사는 경기도 ‘리딩ON경기’ 연계 사업인 ‘마중 나온 도서관’의 하나로 기획됐다. 도서관이 시민을 기다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의 공간으로 직접 다가간다는 취지는 이천시청 모두의 광장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펼쳐졌다.
시청 광장은 행정 업무를 위해 찾는 장소이자 시민들이 오가는 열린 공간이다. 이곳에 서가와 독서 쉼터, 체험 부스와 무대가 들어서면서 평범한 이동 공간은 책을 읽고 문화를 즐기는 장소로 바뀌었다. 책을 목적으로 방문한 시민뿐 아니라 산책하던 주민도 부담 없이 행사장을 둘러볼 수 있어 도서관과 시민 사이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책을 고르고 잔디밭에 앉아 읽은 뒤 체험과 공연을 즐기는 과정은 독서를 어렵지 않은 생활문화로 보여줬다. 조용히 읽고 싶은 시민에게는 나무 그늘과 쉼터가, 함께 즐기고 싶은 가족에게는 체험 부스와 무대 프로그램이 각각 선택지를 제공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이어진 ‘2026 쌀롱 드 도서관’은 가을의 시청 광장에서 책과 시민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면을 만들었다. 야외 서가를 둘러보는 사람, 텐트에서 책을 읽는 가족, 만들기에 몰입한 어린이, 독서골든벨에 도전한 참가자가 한 공간에 어우러졌다.
행사는 책의 문턱을 낮추고 독서의 형태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도서관의 기능을 광장으로 확장하고 독서와 공연, 창작 체험, 나눔을 연결한 이번 행사는 시민들이 일상 가까이에서 책을 접할 수 있는 지역 독서문화의 현장을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