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거꾸로 온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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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거꾸로 온 숲길

설봉호수에서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가을길

이천 설봉산 생태숲길은 설봉공원 안의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설봉서원으로 이어지는 산책 구간이다. 설봉호수 둘레길과 설봉공원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숲길로 연결된다. 휴식과 생태교육, 자연 체험 기능을 함께 갖춰 시민과 등산객이 비교적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설봉산과 영월암, 설봉서원을 찾는 시민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추진된 생태숲길은 2024년 6월 조성을 마쳤다. 기존 숲과 계곡을 가능한 한 보존하고 나무와 물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데크형 산책로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가을이 막 시작되는 시기에는 설봉산에서 이색적인 풍경도 관찰된다. 일반적으로 단풍은 기온이 낮은 높은 곳에서 먼저 시작되는 모습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는 산 아래 설봉호수 주변부터 가을빛이 나타나고 산으로 오를수록 푸른 기운이 남아 있었다. 호수와 숲이 서로 다른 속도로 계절을 맞는 장면이 산책길에 잔잔한 변화를 더한다.

충효동산에서 되새기는 이천의 역사

생태숲길로 향하기 전에는 설봉공원 제4주차장 건너편의 충효동산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은 이천이 배출한 역사 인물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공간이다.

중앙광장에는 이천의 대표 역사 인물인 장위공 서희 선생 동상이 세워져 있다. 주변에는 충·효·열 인물을 기리는 기념 벽과 애국지사 기록 공간, 무공수훈자 공적비가 자리한다. 소방공무원 추모 동상과 6·25 참전 기념비, 현충탑도 함께 조성돼 있다.

충효동산 상단부의 현충탑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정돈된 산책로와 주변 숲이 어우러져 있으며, 방문객들이 차분하게 걸음을 늦추고 추모와 사색의 시간을 갖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충효동산을 지나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옆길로 이동하면 설봉산 생태숲길에 들어선다. 생태숲길을 바로 이용하려는 경우 차량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앞 설봉공원 제3주차장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420미터에 담긴 숲과 계곡

설봉산 생태숲길의 총길이는 420m다. 길이만 보면 짧은 산책로지만, 일반 등산로처럼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기보다는 숲의 상태와 생태환경을 천천히 관찰하도록 구성됐다.

데크 산책로는 기존 나무와 계곡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면서 보행 편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길을 따라서는 숲의 풍경을 바라보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돼 있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물소리가 겹치면서 숲 안에는 차분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계곡을 품은 이 길은 여름철에도 숲과 물이 어우러진 피서형 산책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가을에는 호수 주변과 산자락이 서로 다른 속도로 물들어 계절의 진행을 비교하며 걸을 수 있고, 숲이 푸른 시기에는 계곡과 수목을 중심으로 생태환경을 살펴볼 수 있다.

애반딧불이가 사는 청정 생태환경

설봉산에는 희귀종인 애반딧불이가 서식한다. 예로부터 청정한 자연환경을 간직한 설봉산에서는 가재와 흰진달래, 애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다.

애반딧불이는 깨끗한 물과 습지, 계곡 환경은 물론 충분한 먹이생물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지표종이다. 애반딧불이의 서식은 해당 지역의 생태계가 건강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이천시는 설봉산을 수도권의 대표적인 생태복원 거점으로 조성하기 위해 3년째 복원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기존 생태자원을 보전하면서 시민이 자연의 가치를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사업이다.

생태숲길 안에서 진행되는 애반딧불이 서식처 복원사업이 마무리되면 이 공간은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생태교육 현장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방문객에게는 단순히 걷는 길을 넘어 깨끗한 물과 계곡, 먹이생물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과정을 이해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숲길 끝에서 만나는 설봉서원

생태숲길 끝에는 설봉서원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약 800m를 더 오르면 천년고찰 영월암으로 이어진다. 설봉호수와 충효동산, 생태숲길, 설봉서원, 영월암을 차례로 잇는 동선에서는 자연과 역사문화 공간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설봉서원은 조선시대 이천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자 선현을 추모하던 장소다. 1564년인 명종 19년, 당시 이천 부사 정현이 서희를 배향하고 유생을 교육하기 위해 안흥지 주변에 향현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경기도 지역 최초의 서원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이후 이관의와 김안국, 최숙정을 추가로 배향했다.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본 뒤 1593년인 선조 26년에 현재의 설봉산 자락으로 이전했고, 이때 설봉서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으나, 사라진 지 136년 만인 2007년 4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2022년에는 조선 태종 때 우의정을 지낸 재상 서선을 추가로 배향했다. 이에 따라 설봉서원은 현재 다섯 선현을 모시는 오현 체제를 갖추고 있다.

배움과 제향이 공존하는 공간 구성

설봉서원은 약 2,000평 규모로, 앞쪽에 배움의 공간을 두고 뒤쪽에 제향 공간을 배치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 구조를 따른다. 서원 건축이 지닌 교육과 추모의 기능이 공간 배치에 그대로 드러난다.

유생들이 한문을 연구하던 강당은 명교당이라 불린다. 현재도 강의와 교육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명교당 앞에는 학생들이 머물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고 있다.

서쪽 기숙사인 서재에는 구사재 현판이 걸려 있다. 군자는 늘 자신을 돌아보며 행실을 삼가야 할 아홉 가지 일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동쪽 기숙사인 동재에는 매일 세 번 자신을 반성하고 몸을 닦는다는 의미의 삼성재 현판이 달려 있다. 동재 위쪽에는 관리동인 양사재가 자리한다.

강당인 명교당 뒤편에는 제향 공간인 사당이 있다. 오현의 위패를 봉안한 상현사는 설봉서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춘향제와 추향제를 봉행하는 장소이며, 내삼문이 닫혀 있을 때는 외부에서 건물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설봉서원은 과거 유림이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리고 학문을 강론하며 젊은 선비를 가르치던 사학교육기관이었다. 현재는 한학과 유학을 비롯한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교육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 2월부터 12월까지 월요일에서 토요일 사이 오전과 오후에 각각 2시간씩 무료 교육을 진행하며, 수업 일정과 운영 내용은 설봉서원의 안내를 기준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370여 년 느티나무가 만든 가을 풍경

서재 옆 정자와 담장 너머에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 온 느티나무가 있다. 협문을 지나면 약 37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이 느티나무는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2007년 복원된 설봉서원보다 훨씬 긴 시간을 같은 자리에 머물며 설봉산 자락의 변화를 지켜본 나무다. 굵은 줄기와 넓게 뻗은 가지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주변의 화려한 단풍과 보호수의 웅장한 모습이 어우러진다. 오래된 서원 건축과 느티나무, 담장 주변의 나무들이 한 화면에 들어오면서 설봉산 생태숲길 구간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가을 풍경을 만든다. 방문객들은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경관을 바라보며 차분한 시간을 보낸다.

설봉산 생태숲길 이용 정보

구분내용
생태숲길 구간설봉공원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설봉서원까지
생태숲길 길이총 420m
주차이천시립월전미술관 앞 설봉공원 제3주차장 무료 이용
설봉서원 위치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2709번길 276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위치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2709번길 185
설봉서원 운영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설봉서원 휴무매주 일요일
연결 지점생태숲길 종점 설봉서원, 설봉서원에서 약 800m 위 영월암

설봉산 생태숲길은 자연 생태와 지역 역사를 한 번에 만나는 짧고 밀도 높은 산책로다. 설봉호수에서 시작된 가을빛을 따라 충효동산을 지나 숲과 계곡을 걷고, 설봉서원의 교육·제향 공간과 보호수 느티나무까지 살펴볼 수 있다.

생태환경 보전과 안전한 보행 공간 조성을 함께 추진한 이 길에서는 빠른 등산보다 느린 관찰이 잘 어울린다. 물소리를 듣고 수목의 변화를 살핀 뒤 오래된 서원과 느티나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면, 설봉산이 품은 자연과 이천의 역사가 하나의 산책 동선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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